100년 전 일제의 폭압에 맞서 자유와 독립을 외쳤던 수원지역의 항일운동 역사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시민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수원 구도심 일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수원 근대 인문기행-대한독립의 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 탐방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총 4.5km 구간을 도보로 이동하며, 약 3시간이면 수원지역 독립운동의 주요 무대와 인물들의 숨결을 되새길 수 있다.
●만세운동이 울려 퍼졌던 ‘연무대’에서 출발
1919년 3월 16일, 수원 장날이었던 이날 수백 명의 시민이 ‘연무대’에서 시작해 팔달문과 종로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만세를 외쳤다. 당시 무예 훈련장이던 연무대는 지금은 잔디밭과 여가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항일운동의 출발점으로 기억된다.
연무대에서 이어지는 ‘방화수류정’은 김세환, 김노적 등 청년 지식인들이 횃불 시위를 기획하고 봉수를 연결한 수원만세운동의 중심지다. 오늘날에는 용연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시민들의 피크닉 명소가 됐지만, 이곳이 지닌 항일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근대 교육과 종교의 흔적, 항일의 공간
수원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목에는 수원동신교회와 매향중학교·여자정보고등학교가 있다. 1900년대 초 일본·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이들은 교육과 종교를 매개로 항일의식을 키워냈다.
삼일여학교의 전신인 매향학교는 여성 독립운동가 양성의 터전이었다. 아담스기념관은 미국 노스 아담스 교회 후원으로 건립돼 수원 출신 임면수 독립운동가가 공사 감독을 맡았다. 김세환이 학생들의 등굣길을 위해 놓은 다리인 ‘매향1교’도 당시 지역사회의 항일 의지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장소다.
●고딕 건축물에 담긴 항거의 흔적
‘북수동성당’은 수원의 또 다른 항일 상징지다. 뽈리 신부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글 교리서를 사용하며 민족정신을 지켰다. 이곳은 과거 천도교 대교구의 중심이었고, 수원지역 3·1운동을 주도한 핵심 세력 중 하나였다.
인근 ‘수원종로교회’는 삼일여학교 설립과 애국계몽운동의 기점으로, 김세환·이하영·이선경 등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한 수원 항일운동의 거점이다.
●행궁과 탑에 깃든 민족의 얼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 병원으로 쓰이던 시절에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특히, 1919년 3월 29일 수원기생 김향화와 기생 30여 명이 만세를 외친 사건은 수원 만세운동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기록된다.
화성 서장대 정상에 이르면 수원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3·1독립운동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항거의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기행의 종착점은 수원 독립운동의 중심 인물 ‘김세환’ 선생의 집터다.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서 수원과 충청 지역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김세환의 생가는 현재 카페로 운영되며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그의 정신을 알리고 있다.
경기｜장관섭·박병근 기자 localcb@donga.com
기사등록시간: 2025-05-06 10:09:02
